설교이야기

2012. 2.26 한올교회 주일오전 성경이야기(33) 포로귀환5_느헤미야

어린왕자93 2012. 2. 28. 20:19

 

 

영상: http://youtu.be/wTC8GMHezG4

pptx: http://www.box.com/s/0g5ta5s63xflff271qhl

 

2012. 2.26 한올교회 주일오전 성경이야기(33) 포로귀환5_느헤미야

느헤미야 1: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가 한 말이다. 이십년 기슬르월, 내가 도성 수산에 있을 때에,

2 나의 형제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유다에서 왔기에, 이리로 사로잡혀 오지 않고, 그 곳에 남아 있는 유다 사람들은 어떠한지, 예루살렘의 형편은 어떠한지를 물어 보았다.

3 그들이 나에게 대답하였다. "사로잡혀 오지 않고 그 지방에 남은 사람들은, 거기에서 고생이 아주 심합니다. 업신여김을 받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다 불에 탔습니다.“

 

1. oops! 평형을 뒤집어라

오늘은 말씀을 시작하기에 앞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첫 번째는 뒤에 배너가 배송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어요. 지난주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거든요. 그런데 아직 배너가 도착을 안했어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목소리요. 학생 중엔 제 쉰 목소리를 좋아하는 학생이 있던데... 진아야 괜찮아? ^^ 그래도 맑고 청량한 목소리가 아니라 이렇게 탁하고 쉰 목소리로 설교를 하게 되어서 너무 죄송해요.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잖아요. 아마추어로는 노래를 그래도 한다고 하던 이들이 오디션에 합격하고서 그 이전보다 훨씬 더 열심히 노래 연습을 해요.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니 실력도 늘고, 스타일도 멋있어지더라구요. 그런데 노래연습의 시간이 많아지면서 꼭 목상태가 안좋아지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예 프로들도 목상태가 항상 좋을 순 없잖아요. 감기도 걸릴 수 있고, 저희 목회자나 교사처럼 목을 많이 사용하는 직업이니까요. 목사, 교사, 아나운서 모두 성대결절 등 목에 관련된 질환은 항상 달고 살아요. 그런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목상태를 관리하지 못해서 노래를 못할 때 아주 혹독하게 비판하더라구요.

 

Kpop스타 2012.02.12.

 

깜짝 놀랐어요. 최선의 노래를 위해서 노래연습할 때가 아니면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아야 한다구요.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많이 생각했어요. 절대로 놓쳐셔는 안되는 것이 무엇인가? 그렇다고 제가 목이 쉬었다고 자책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목이 쉬었다고 목감기에 걸렸다고 설교를 못하는 건 아니니까요. 오히려 제가 어릴 땐 목사님들 목소리가 대부분 이러셨어요. ^^ 기도를 많이 해서 목이 쉬셨고, 그 목소리가 은혜롭다고 여겨질 때도 있었으니까요. ^^ 그런데 이번주에 목감기가 같이 오니 이거 설교를 할 수 있을까?까지 걱정되는 거예요. 기도부탁드려요. 오늘 내일까지 하루 5시간씩 강의하는 이번 겨울 마지막 수련회가 있어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왜냐면 저에겐 이번 겨울 10번의 수련회 중 마지막 수련회이지만 오늘 만날 월곡교회 청소년부에겐 이번 겨울 단 한번밖에 없는 수련회이니까요. 예 목회자가 설교와 기도를 많이 해서 목이 아픈건 당연한 일일 수 있어요. 하지만 설교를 못할 정도가 되는 건 목회자 답지 않은 거예요. 여러분이 걱정하지 않도록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지킬게요. ^^

 

그런데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목상태 말고 목회자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 생각했어요. 아니 목회자만이 아니라 우리 신앙인들이 지켜야 할 것이 있지 않을까? 여러분 무엇이 있을까요? 기독교인이 아니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일, 혹은 상태가 기독인에겐 박진영이 이미셀씨를 혹독하게 비판하듯 문제가 될만한 일이요. 노래 연습을 많이 해서 목이 쉬었다? 일반인들에겐 너무 열심히 했다며 목이 아픈 상태에서도 아까 본 정도의 노래를 한 것에 대해 아낌없이 박수를 보낼 수 있어요. 하지만 가수에겐 말을 한 것조차 후회가 되어야 하는 일이래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신앙인으로서, 기독교인으로서 예수님의 사람으로서 정말로 간절하고 절실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말이에요.

 

간절懇切함과 절실切實... 재미있는 건 두 한자에 모두 끊을 절자가 들어간다는 거예요. 마음을 정성을 끊어내는 것이 간절이고 열매라는 건 나무에게 제일 중요한 거잖아요. 그런데 그런 열매를 끊어내야 할정도로 매우 급박하고 다급한 일... 여러분에겐 무엇입니까? 우선 앞서 나눈 것처럼 직업에 따라 하는 일에 따라 간절하고 절실한 일이 다를 거예요.

 

박진영에겐 노래를 위해선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아야 항정도로 노래가 절실했어요. 그런데 어찌보면 더 절실해야 할 이미셀씨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 대화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간절과 절실에 모두 끊을 절자가 들어간다고 했죠? 예 정말 필요하다면 끊어버리는 것 이 필요해요. 끊어버리지 못한다는 건 그만큼 간절하거나 절실하지 않다는 뜻이죠. 고등학교 때 공부를 위해 머리를 끊어버리는 절하는 삭발하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심지어는 눈썹을 밀어버리는 친구도 있었죠. 부끄러우니까 밖에 안나가게 되고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 그리고 꿈을 위해 다른 것들을 끊어버리는 절하는 거였어요. 우리 교회에도 드라마를 정말 좋아하는 한 학생이 있는데 일년동안 드라마를 끊었어요. 항상 목사님 수능끝나면 밀린 거 다 볼거예요라고 말했는데 다 봤나요? ^^

 

예 지난 에스라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끊어버림, 절에 대해서 나누어 봤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할 이스라엘이 이방인들과 문화를 섞는 것, 이방문화가 이스라엘 안에 들어오는 것은 이스라엘에겐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끊어버림보다 무엇에 간절하고 절실하여 끊어버려야 하는가?를 묻는 거예요. 이미셀이 말하면 안되는 이유는 그의 꿈이 바로 노래이기 때문이에요. 다른 사람에게 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 말이 노래를 방해한다면 예 끊어버릴 수 있어야 했어요. 그럼 이스라엘은 왜 이방인과 결혼하거나 어울리면 안되었을까요? 구약율법에서도 그들이 정결예법을 치루는 이유는 단 한가지에요. “예배에요. 사람을 사랑하는 건 죄가 될 수 없지만 결혼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건 죄가 되잖아요. 그러니 누구를 좋아하는 감정이 죄인 것이 아니라, 신실하게 사랑해야 할 사람을 위해 다른 감정을 끊어내지 않은 것이 죄인 거예요.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확정한 이스라엘에게도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결단했기에 세상문화를 끊어버려야 했던 거예요. 그래서 그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울고 그들이 사랑했던 아내와 며느리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며 눈물로 그들을 보냈어요. 끊어냈어요. 오늘은 절! 끊어버림 이후의 이야기에요. 많은 이들이 이 끊어버림에 대해 간증을 해요. 술을 끊었습니다. 마약을 끊었습니다. 담배를 끊었습니다. 게으름을 끊었습니다. 욕을 끊었습니다. 미움을 끊었습니다. 그런데 끊는 것만으론 부족해요. 무엇에 간절하고 절실한가가 더 중요해요.

 

2. ugh! 모순을 분석하라

... 이방인 며느리와 아내를 떠내보낸지 시간이 흘러 에스라가 페르시아로 돌아온 후 13년이 지났어요. 어때요? 에스라가 왔으니 예루살렘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겠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찬 공동체가 되었겠죠? 아니요. 오늘 본문이었던 2,3절 읽어볼께요.

 

느헤미야 1:2 나의 형제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유다에서 왔기에, 이리로 사로잡혀 오지 않고, 그 곳에 남아 있는 유다 사람들은 어떠한지, 예루살렘의 형편은 어떠한지를 물어 보았다.

3 그들이 나에게 대답하였다. "사로잡혀 오지 않고 그 지방에 남은 사람들은, 거기에서 고생이 아주 심합니다. 업신여김을 받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다 불에 탔습니다.“

예루살렘의 형편을 본 유대인들의 평가는 아주 단호했어요. 고생이 심하고, 업신여김을 받는데 그 이유가 성벽이 허물어지고 성문이 불에 탔기 때문이었어요. 생각해보세요. 벽이 다 무너지고 문도 불에 탄 곳에 살아요. 거기 누가 살아도 피난민 이상으론 보이지 않아요. 성벽이란 단순히 벽을 의미하지 않아요. 적의 침입을 맞아주는 가장 중요한 울타리였어요. 그리고 성문은 한밤 중에 걸어잠그고 편히 잠을 잘 수 있는 또 다른 울타리이자, 그 성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지나치는 첫관문이었어요. 우리나라도 국보 1호가 숭례문, 보물 1호가 동대문이잖아요. 그런데 성벽이 허물어지고 성문이 불탔다는 건 그 나라 자체가 무너졌다는 것을 뜻해요. 그리고 뒤에 보면 여전히 이방인들과 결혼하고 있었어요. 아시죠? 한번에 끊어지지 않는 다는 것을요.이 말을 들은 느헤미야의 반응을 읽어볼까요?

 

1:4 이 말을 듣고서, 나는 주저앉아서 울었다. 나는 슬픔에 잠긴 채로 며칠 동안 금식하면서,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여 아뢰었다.

 

?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구절인데요? 예 지난주에 나눈 에스라 9:3절과 거의 같아요.

 

에스라 9:3 이 말을 들은 나는, 너무나 기가 막혀서, 겉옷과 속옷을 찢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뜯으면서 주저앉았다.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들과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울었어요. 그런데 느헤미야는 성벽이 무너져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울었어요. 왜 이런 차이가 난걸까요? 이유는 간단해요. 그들의 거룩한 불만이 달랐던 거예요. 하나님은 지금도 존경받는 가장 훌륭한 율법학자인 에스라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정치인이었던 느헤미야를 통해서도 일하셨어요. 왜냐면 종교인이 볼 수 있는 것과 정치인이 볼 수 있는 것은 다르니까요.

 

3. aha! 실마리를 드러내라

그 다음 이야기는 에스라와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진행이 되요. 에스라나 느헤미야 모두 아닥사스다 왕에게 총애를 받고 있었어요. 에스라가 떠난지 13년후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가장 가까운 신하였어요. 성경에 술잔을 받들어 올리는 일을 맡고 있었다(1:11)라고 나오는데 왕을 죽이려는 세력에게 가장 쉬운 방법이 독을 타는 일이었고, 술은 술 자체의 냄새가 강하기 때문에 독을 타기 가장 쉬운 음식이었어요. 그래서 당시 술을 올리는 사람은 왕이 가장 믿을 수 있고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의논하는 사람이었거든요. 느헤미야는 성병이 무너져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의 거룩한 불만이 시작되었어요. 어떻게 해서든 예루살렘의 그 비참한 상황을 듣고 끊임없이 생각했어요. 그러다보니 왕에게도 그의 고민이 보였어요. 그러자 왕이 물어요.

 

2:2 "안색이 좋지 않구나. 아픈 것 같지는 않은데, 무슨 걱정되는 일이라도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나는 너무나도 황공하여

3 "임금님, 만수무강 하시기를 빕니다. 소신의 조상이 묻힌 성읍이 폐허가 되고 성문들이 모두 불에 탔다는 소식을 듣고서, 울적한 마음을 가누지 못한 탓입니다" 하고 아뢰었더니,

4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왕께서 또 나에게 물으셨다.

 

일사천리로 진행되죠? 그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나서 자신이 직접 예루살렘으로 가서 예루살렘의 성벽을 중건하고 오고 싶다고 말해요. 그런데 에스라는 예루살렘으로 올 때 왕께 부끄러워 그들을 지켜줄 수 있는 병사들도 없이 기도로만 도착했다고 했죠? 느헤미야는 달라요.

 

2:7 나는 왕에게 덧붙여서 말씀드렸다. "임금님께서 좋으시다면, 소신이 유다까지 무사히 갈 수 있도록 유프라테스 서쪽 지방의 총독들에게 보내는 친서를 몇 통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8 또 왕실 숲을 맡아 보는 아삽에게도, 나무를 공급하라고 친서를 내리셔서, 제가 그 나무로 성전 옆에 있는 성채 문짝도 짜고, 성벽도 쌓고, 소신이 살 집도 짓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의 하나님이 선하신 손길로 나를 잘 보살펴 주셔서, 왕이 나의 청을 들어주었다.

 

이렇게 페르시아 왕의 명령으로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했어요. 그리고 그는 예루살렘의 폐허가 그대로 남아있음을 홀로 돌아봐요. 그리고 사람들을 모아놓고 성벽을 다시 쌓자고 말해요.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지 140여년지 지난 후였고 고레스 칙령에 의해 첫 번째 귀환자들이 돌아온지 80여년이 지난 다음이었어요. 성전이 건축된 후 58년간 멈추었던 시간을 에스라가 움직이게 했다고 했죠? 마찬가지로 느헤미야도 포로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어도 해결하지 못한, 아니 꿈도 꾸지 못했던 꿈...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시작하게 했어요.

 

그 이후의 일이요? 참 재미있는 건 에스라 때도 그랬지만... 아무도 시작할 엄두도 내지 않던 일을 느헤미야가 시작하자고 하자 온 이스라엘이 일어나 성벽을 쌓기 시작해요. 지파별로 집안별로 구역을 맡아서 최선을 다해 성벽을 쌓았어요. 3장에 보면 어떤 사람들이 성벽의 어느 부분을 쌓았는지 나오는데, 그 길이가 다 달라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한 거예요. 그런데 아무 문제가 없었을까요? 그럴리가요. 산발랏과 도비야라고 하는 이방인들이 조직적으로 성벽쌓는 일을 방해하고, 느헤미야가 왕이 되려고 한다는 거짓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심지어 일하는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했어요. 느헤미야는 어떻게 했을까요?

 

4:9 그래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우리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비병을 세워, 밤낮으로 지키게 하였다.

 

기도하고 또 실제로 경비병을 세웠어요. 그래도 방해가 심해지자 불가능할 것 같다는 현실론이 퍼지기 시작했어요.

 

4:10 그런데 유다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노래가 퍼지고 있었다. 흙더미는 아직도 산더미 같은데, 짊어지고 나르다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 힘으로는 이 성벽 다 쌓지 못하리.

 

4. Whee 복음을 경험하라

...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불만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도 꼭 이런 일들이 있어요. 안될거야. 못할거야. 부족해. 그때 느헤미야가 그들을 격려하며 한 말이에요.

 

4:14 백성이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나는 귀족들과 관리들과 그 밖의 백성들을 격려하였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위대하고 두려운 주님을 기억하고, 형제자매와 자식과 아내와 가정을 지켜야 하니, 싸워라.”

 

누구를 두려워 할 것인가?를 묻는 거예요. 다시한번 반복해봅시다. 내 앞에 있는 문제보다 누가 더 크다? 예 예수님이요. 그들이 하나님을 기억하자... 15절에 보면 그들의 음모가 밝혀졌다고 해요. ... 안될 것 같다. 못할 것이다라는 생각자체가 적들의 음모였던 거예요.

 

그들은 다시 힘을 내요. 절반은 무기를 들고, 절반은 일을 했어요. 그리고 짐을 나를 때도 한손에는 짐을 한손에는 무기를 들었어요. 성벽을 한꺼번에 쌓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뉘어 있으니 문제가 있을 때 나팔을 불면 모두 달려가 도울 수 있는 조직도 만들었어요. 여기서 잠깐... 여러분이 느헤미야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거룩한 불만을 이룬다! 고민한다! 그만둔다! 느헤미야가 지치지 않고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어요.

느헤미야서 내내 계속 반복되는 구절이 있거든요. 오늘 말씀카드 본문이기도 해요.

 

5:19 "나의 하나님,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하는 모든 일을 기억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13:14 "하나님, 내가 한 일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의 성전을 보살핀 일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정성껏 한 이 일을 잊지 마십시오.“

13:22 나는 또 레위 사람들에게, 몸을 깨끗하게 하고 와서 성문마다 지켜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내라고 하였다."나의 하나님, 내가 한 이 일도 기억하여 주십시오. 그지없이 크신 주님의 사랑으로 나를 너그러이 보아주십시오.“

13:31 또 사람들에게 때를 정하여 주어서, 제단에서 쓸 장작과 처음 거둔 소산을 바치게 하였다."나의 하나님, 나를 기억하여 주시고, 복을 내려 주십시오."

 

그는 항상 자신이 한 일을 하나님께 기억하여 달라고 기도했어요. 느헤미야는 정말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었던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 어떤 기도를 하게 되십니까? 제 삶을 제 죄를 용서해주세요. 잊어주세요. 지워주세요라고 기도할 때도 있죠? 제가 어릴 때 수련회에 가면 기도회의 절반이상을 회개기도만 했어요. ... 회개기도 중요해요. 왜냐면 절실, 간절의 단어처럼 분명 끊어버려야 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끊어버리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정말 수련회때 회개기도한 것만 생각날때도 많았어요. 그래서 아직도 많은 이들이 수련회에서 울었는가 안울었는가를 수련회 성공의 여부로 판단해요. 그런데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기억해주실 일...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을 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하는 것에 온 생명을 바쳤어요.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 무엇인지를 물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살았어요.

 

왜냐면 그의 삶에 복을 주실 분은 그의 삶을 인도하실 분은 페르시아 왕도 아니고, 그 앞에 있는 백성들도 아니고, 바로 하나님이심을 그는 확실히 믿었기 때문이에요. 그가 간절이 절실히 원했던 것, 그래서 그가 뒤에 나누듯 살았던 이유는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었거든요. 세상에서 기억되는, 역사에서 기억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억되는 사람이요. 제가 지난 주에 우리는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의 죄를 절대 잊지 않지만 하나님은 한순간에 잊으신다고 했죠? 반대로 우리는 사람들에 우리에게 잘해준 건 금방 잊어요. 대신 내가 잘해준건 절대 잊지 않죠. 그래서 우리는 손해보지 않으려고 살아요. 내가 한만큼 대우받으려고 인정받으려고 해요. 그리고 조금만 손해볼 것 같으면 비판하고 판단해요. 내가 네게 어떻게 해주었는데 네가 내게 이러냐! 이러면서 살아요. 하지만 하나님은 이 역시 반대세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선택한 일, 끊어버린 일을 절대 잊지 않으세요. 믿으십니까? 세상의 인기도 명예도 금방 사라져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일을 절대 잊지 않으세요. 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거 기억해주실 것 하나님께서 주실 복을 위해 살아요.

 

이번 한주동안 부산 브니엘 고등학교와 제주중앙고등학교 두 학교에서 저희 학교를 방문했어요. 그런데 두 학교 모두 똑같은 말을 하셨어요. 이걸 누가 해요?를 물으세요. 저희는 이 안에 있어서 잘 모르는데... 외부에 계신 분들이 보시면 많이 놀라세요. 누가했어요? 아시지만 온양한올중고등학교의 모든 교직원들이, 그리고 우리 학생들이 한 일이에요. 서로 손해보지 않으려고 교사와 학생이 학생과 교사가 싸울 때 그래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노력하고 있어서 나온 결과였어요. 제가 요즘 제일 은혜받는 영상이에요. ^^

 

줄업식 영상

 

선생님들이 하셨고, 학생들이 했어요. 왜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니까요. 다른 학교와 다를 것 없지만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원하시는 일들을 조금씰 찾아갔으니까요.

 

5. Yeah 결과를 예견하라

하나님께 기억되기 위해 살전 느헤미야가 어떻게 살았는지 볼까요?

 

4:23 나도, 나의 형제들도, 내가 데리고 있는 젊은이들도, 나를 따르는 경비병들도,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옷을 벗지 않았으며, 물을 길러 갈 때에도 무기를 들고 다녔다.

 

그는 누구보다 앞장섰어요. 그는 페르시아 왕이 임명한 총독이었고 명령만 내리면 되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나 거룩한 불만을 가진 이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 맨 앞에서 진두지휘를 했어요. 그러다 또 문제가 터져요. 느헤미야가 그렇게 앞장서도 부자들은 따르지 않고 있었어요. 자신들의 종들을 부리기만 했어요. 심지어 가난한 동족들을 종으로 삼았어요. 느헤미야는 또 앞장서서 이야기해요. 누구를 두려워하라구요? 예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구요. 누가 기뻐하는 일을 하자구요? 하나님이요. 그는 하나님께 기억되고 싶은 일을 했어요. 그래서 유대인들끼리는 돈을 빌려줄 때도 이자를 받지 말고, 빼앗은 논과 밭, 그리고 종되었던 이들을 풀어주라고 해요. 부자들이 따랐을까요? ... 왜요?

 

5:14 나는 아닥사스다 왕 이십년에 유다 땅 총독으로 임명을 받아서, 아닥사스다 왕 삼십이년까지 십이 년 동안 총독으로 있었지만, 나와 나의 친척들은 내가 총독으로서 받아야 할 녹의 혜택을 받지 않았다.

 

느헤미야만이 아니라 느헤미야의 친척들까지 마땅이 받을 수 있는 녹, 우리에겐 월급을 받지 않았어요. 그리고 오히려 자신의 곳간을 열어 매일 150명을 먹였어요. 150명 중엔 유대인만이 아니라 그가 품어야 할 이방인도 포함되어 있었어요. ... 리더가 이렇게 본을 보이는데 따르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요. 느헤미야를 통해 유대인들이 하나가 되어가자 그의 대적들은 이번엔 그를 죽이려고 거짓말을 해요. 그를 암살하기 위해 외딴 곳으로 불러내기도 하고, 심지어는 거짓 예언자를 보내 그가 하나님께 죄를 짓게 하려고 제자장이 아닌 그가 들어가서는 안되는 성전에 들어가게 하려고 해요. 그리고 정치적으로 끊임없이 협박을 해요. 하지만 그는 넘어가지 않아요.

 

6:15 성벽 공사는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났다.

 

그리고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공사가 52일만에 끝났어요. ... 52일이 그들에겐 몇 년 아니 몇십년같았을 거예요. 우리가 지난 방한 50여일과는 달랐어요. 성벽이 완공되었으니 느헤미야의 거룩한 불만이 끝났을까요? 아니요. 느헤미야의 거룩한 불만은 단순히 성벽이 무너진 것만이 아니었어요. 예루살렘이 폐허가 된 것...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이 다시 아름다운 도시가 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그는 이후에도 예루살렘을 하나님을 예배하는 도시로 만들기 위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구별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예배하는데에만 집중하도록 십일조를 구분하고, 예루살렘에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했어요. 그리고 예배를 위해 안식일을 정확히 지킬 수 있도록 안식일에는 어떠한 장사도 하지 못하게 금지했어요.

 

하지만 이 모든 일을 혼자 하지 않았어요. 이미 와 있던 에스라의 도움을 받아요.

 

8:1 모든 백성이 한꺼번에 수문 앞 광장에 모였다. 그들은 학자 에스라에게,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라고 청하였다.

 

예 분명 13년전에도 에스라와 함께 울며 말씀대로 살기로 결단했던 이스라엘이었어요. 그러나 느헤미야를 통해 성벽이 재건된 이스라엘은 이제 두려워하지 않고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있었어요. 에스라가 말씀을 그들에게 전하기 시작했어요. 창조로부터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그리고 그들, 아니 우리라고 합시다. 우리의 죄, 하나님을 거절함,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끝까지 참고 기다리신 일들, 우리의 죄로 인한 결과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잊지 않으신 이야기... 하나님만을 절실히, 간절히 예배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자 그들은 모두 울기 시작했어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고, 자신들의 죄에 아파했어요. 그리고 말씀대로 초막절을 지키고, 대속죄일을 지켰어요. 그리고 모두 기쁨으로 성벽 준공식을 예배로 드렸어요.

 

12:43 그 날, 사람들은 많은 제물로 제사를 드리면서 기뻐하였다. 하나님이 그들을 그렇게 기쁘게 하셨으므로, 여자들과 아이들까지도 함께 기뻐하니, 예루살렘에서 기뻐하는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모두가 기뻤어요. 모두가 행복했어요. 여러분 바로 이것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에요. 믿으십니까?

 

느헤미야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하나님의 거룩한 불만을 가진 한 사람의 지도자의 영향력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어요. 그는 정말 간절히, 또 절실히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길 원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실 것을 믿었어요. 그는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불쌍한 동족 유대인들을 진심으로 돕고 싶었어요. 그래서 페르시아에서의 안락한 삶도 끊고, 총독으로 누릴 수 있는 부유함도 포기하고, 리더로서 누릴 수 있는 편안함도 포기했어요. 그리고 모든 일을 기도로 했고, 항상 하나님께서 감동시켜주시는대로 행동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 기억되고 싶어하는 사람이었어요. 세상의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을 바라는 사람이었어요.

 

여러분 드디어 2012년 새학기 시작되요!! 2012년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거룩한 불만을 가지고 달려갑시다. 정말 간절하게 절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를 위해 끊어야 할 것들을 끊고! 하지만 끊어야 할 것이 아닌 하나님의 뜻,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일을 위해 살아갑시다. 끊어야 할 것들을 끊지 못함을 슬퍼했던 에스라를 통해 48년간 멈추었던 신앙의 시간이 흐른 것처럼,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일을 위해 살았던 느헤미야를 통해 그들이 앞으로 500년간 살아갈 삶의 기반이 만들어졌습니다. 여러분 그들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일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들을 위해 살았고, 그를 통해 멈추었던 시간을 움직이고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지난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한 거룩한 불만을 가지고 높은 하늘 보좌를 끊어버리심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끊어버리시고 십자가를 지심을 기억하는 사순절기입니다. 왜냐면 예수님께서 간절하게 절실하게 구원하고 싶은 사람이 바로 우리였기 때문입니다. 간절하고 진실하게 사랑하신 분이 바로 우리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절실하고 간절히 우리를 사랑하셨듯, 이 사순절기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기뻐하실 일을 절실하고 간절히 하는 사순절기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 찬양은 세상이 당신을 모른다 하여도입니다. 하나님의 절심함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며 찬양합시다.

 

세상이 당신을 모른다 하여도 주님은 그 이름 마음에 새겼네 / 세상이 주님을 모른다 하기에 오늘도 그 이름 열방에 새기리 / 땅의 모든 끝이 주께 돌아오게 되리 /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아버지의 꿈 / 당신의 삶을 통해 이뤄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