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29 한올교회 주일오전 성경이야기(55) 부활이요 생명 / 나사로
영상: http://youtu.be/eKJ53QzOFTQ
pptx: https://www.box.com/s/109e93fda483d26dcb03
2012. 7.29 한올교회 주일오전 성경이야기(55) 부활이요 생명 / 나사로
요한복음 11:3 그 누이들이 사람을 예수께로 보내서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 앓고 있습니다."
1. oops! 평형을 뒤집어라
여러분 때문에 행복합니다. ^^ 우선 맑고 청량한 목소리를 들려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ㅠㅜ 처음 만나는 학생들, 청년들이지만 함께 말씀을 나누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다보면 정말 속으로부터 터져나오는 탄식이 흘러나와요. 그들의 세밀한 이야기를 몰라도 울면서 기도하는 친구들을 보면서도 그 마음이 느껴져 안타깝지만 기도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볼 때 더 안타까워요. 특히 머리모양이나 옷모양에서 “난 여기 억지로 왔으니 난 건들지 말아주세요”라는 말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어요. 나가려고 하고 누우려고 하고 고개를 숙여요. 그런데 그런 학생들을 볼 때 더 안타까워요. 어떻게 해서든 그 학생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전해주고 싶어요. 그러다보면 마이크를 끄기도 하고, 다가가서 깨우기도 하죠. 무엇보다 기도할 땐 참기가 힘들어요. 머릿속으론 생각해요. 내일도 설교가 있으니 최대한 조심해야해. 그래서 설교전에 찬양할 땐 최대한 목을 아껴서 찬양해요. 정말 답답해도, 제게 주어진 것이 말씀을 전하는 사명이니까요. 목이 안좋을 때 제일 안좋은게 노래라고 하더라구요. ㅠㅜ 그런데 설교할 때는 조절이 안되고, 기도할 땐 그냥 주시는 마음대로 기도해요. 그러다보니 이렇게 되더라구요. ^^ 대신에 걱정은 안해요. 하나님께서 끝까지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붙잡아주실 거라는 걸 아니까요. ^^ 오늘도 그런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어요. ^^
그런데 혹시 여러분도 그럴 때 있지 않으세요? 머리론 어떻게 해야하는 알지만 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을 때요. 어제 그리고 오늘 새벽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천국과 지옥을 오갔어요. 금메달을 기대하던 박태환 선수가 예선전에서 부정출발로 실격되었을 때, 어깨를 움직였다고 하죠? 그런데 갑자기 기분이 그렇던데요? 그러다가 3시간 반만에 실격이 취소되었다는 것을 들었을 때... 또 기분이 좋아지고, 은메달을 땄을 때... 그래 은메달도 너무 잘한거야 축하해야지 하면서도 바로 TV를 끄는거요. 어제 금은동이 하나씩 나왔고 메달획득에 실패한 선수들도 정말 최선을 다한 명경기를 보여주었어요. 남자 양궁도 그랬고, 펜싱의 남현희씨도 그랬어요. 그 모습 하나하나가 너무 멋있었어요. 그런데도 아쉬운 건 어쩔수 없더라구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올림픽은 우리가 직접 뛰는 건 아니잖아요. 보고 응원하는 것도 마음대로 안되요. 그런데 우리가 당사자인 것도 그래요. 부모나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 예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거예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우리 학생들도 공부를 잘하고 싶어요. 그리고 공부를 해야한다는 것도 알아요. 그런데 공부가 안되는 게 속상하다는 글이 페이스북에 매일 올라와요. 공부해야할 때인 건 아는데 공부하라는 소리가 싫어요. 그죠? 또 반대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 중엔 사람에 대한 감정이 잘 조절이 안돼는 경우도 있어요. 공부하는 순간 모든 친구들을 적으로 돌리는 학생들도 있죠. 친구라는 걸 알아도 화가 버럭 난데요. 그것뿐인가요? 어떤 걱정이나 두려움이 마음속으로 들어오면... 예...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어요.
이건 선생님 부모님도 마찬가지에요. 방학은 학생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잖아요. 직장에 들어가 학생이라는 신분이 끝나는 순간, 방학은 없어져요. 다들 그 때가 좋은 거야라고 하면서도, 놀아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공부를 시키고 있죠? 그러면서도 난 쉬고 싶구요. ^^ 아이들을 사랑해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이 들어오면 막 짜증을 내고 있구요.
예... 우리의 몸과 마음은 마음먹은 대로 내가 판단한대로 잘 움직여지지 않아요. 어떤 사람은 계획대로 하는 것이 잘 안되고, 어떤 사람은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이 잘 안되고, 어떤 사람은 몸이 따라주질 않아요. 어떤 사람은 생각의 고리를 끊을 수 없고, 어떤 사람은 게으름의 고리를 끊을 수 없어요.
2. ugh! 모순을 분석하라
오늘 말씀에도 생각과 마음과 몸이 따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와요. 예수님 이야기를 계속 읽고 있는데요. 북쪽 갈릴리지역에서 예루살렘으로 이동한 이야기를 읽어봤었죠? 그리고 그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여리고에서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만난이야기, 그리고 삭개오 이야기후에 하신 한 므나 비유를 나누었어요. 그런데 복음서마다 이야기의 순서가 조금씩 다르거나 빠져있는 부분이 있어요. 누가복음엔 이후 바로 유월절 전주에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요한복음엔 유월절 전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근에서 활동하신 이야기가 좀더 나와있어요.
요한복음 11:1 한 병자가 있었는데, 그는 마리아와 그의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였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3km 떨어진 마을이에요. 예수님을 만나러 온 사람들, 그리고 제자가 된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죠? 그 중에 베다니에 사는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나사로 남매처럼 그 가족의 이름이 다 기록된 경우는 없었어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시면 이 나사로의 집을 중심으로 움직이신 것으로 보아 그만큼 예수님과 가까운 사이였고 중요한 제자들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예루살렘과 거리가 3km정도이니 한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거든요. 그런데 이 세 남매 중 첫째인 나사로가 병자가 되었다고 이야기해요. 이런 상황이면 어떻게 하실래요? 예수님께 부탁하면 되죠. 혈연, 지연 등의 인맥의 부작용에 대해서 말하곤 하지만 병원에 아는 사람있는 건 정말 큰 도움이 될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건 용한 의사를 아는 정도가 아니랑 예수님과 그 제자들에게 집을 제공하는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어요. 그런데 이상한 건 나사로가 거의 죽을정도로 아플 때까지 마리아와 마르다가 예수님께 연락을 하지 않은 거예요. 게다가 예수님이 갈릴리에 계신 것도 아니고 남쪽으로 내려와계셨거든요. 그럼 예수님이 어디에 계셨는가? 이 지도 오른쪽에 보면 요단강 건너 광야쪽에 계셨어요. (요 10:39,40) 세례요한이 세례를 주던 곳으로 로마의 지배를 피해 말씀을 있는 그대로 지키려는 이들이 광야에서 살고 있었거든요. 150여년전 마카비 혁명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에요. 우리가 좀 전에 읽은 11:1절 바로 앞절인 10:41,42절에 보면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을 믿었다라고 되어 있어요. 그런데 왜 아직 예수님이 광야로 갔는지는 나오지 않았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시면 오실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또 그만큼 지도자들의 반대도 심해졌었던 것 기억하시죠? 요한복음 9,10장을 보면 예수님이 자신이 누구이신지 밝기 보여주시면 주실수록, 사람들을 고쳐주면 고쳐주실수록 반대가 심해지는 것을 볼 수 있어요.
10:39 [그러므로]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으려고 하였으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서 피하셨다.
40 예수께서 다시 요단 강 건너 쪽, 요한이 처음에 세례를 주던 곳으로 가서, 거기에 머무르셨다.
예 예수님께서 요단강 건너 쪽 광야로 가신 이유는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려고 하자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 피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그럼 왜 마르다와 마리아가 오빠인 나사로가 아픈데도 연락을 하지 않았는지 아시겠죠? 왜요? 베다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고 지금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있었어요. 오빠가 아프다고 하면 예수님께서 오실거고, 오시면 위험에 빠질게 뻔했어요. 그래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머릿속으론 오시면 안돼. 우리 때문에 예수님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어. 라고 생각하면서도 오빠를 잃을까봐 두려웠어요. 그리고 혹시 예수님이 알아서 오시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있지 않았을까요? 아무튼 오빠가 정말로 위중해지자 사람을 보내 전한 내용이 오늘 우리가 본문말씀으로 읽은 11:3절이에요.
3. aha! 실마리를 드러내라
11:3 그 누이들이 사람을 예수께로 보내서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 앓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사로는 앓는 정도가 아니라 죽어가고 있었어요. 예수님도 4절에 보면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병이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아주 중한병이라는 걸 아셨어요. 실제로 이 날 후 몇일 후에 나사로는 죽었구요. 그런데 그 다음 절은 이해하기가 좀 힘들어요.
5 예수께서는 마르다와 그의 자매와 나사로를 사랑하셨다.
6 그런데 예수께서는 나사로가 앓는다는 말을 들으시고도, 계시던 그 곳에 이틀이나 더 머무르셨다.
예수님께서 세 남매를 사랑하셨다는 이야기가 나온 후 이틀이나 더 머무셨다는 거예요.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사로가 죽은 다음에 살릴려고 죽기를 기다리셨던 것일까요? 에이 그럴리는 없죠. 그럼 왜 이틀이나 더 계신 걸까요? 지도자들이 두려워서요? 아니요 그렇다면 7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을 리가 없어요.
7 그리고 나서 제자들에게 "다시 유대 지방으로 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먼저 유대 지방으로 가자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럼 왜 예수님은 이틀이나 기다리신 걸까요? 그 이유를 유추해볼 수 있는 구절이 다음에 나와요.
8 제자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방금도 유대 사람들이 선생님을 돌로 치려고 하였는데, 다시 그리로 가려고 하십니까?“
예수님이 가자고 하는데.. 제자들의 말은 가겠다는 거예요? 안가겠다는 거에요? 안가겠다는 거예요. 심지어 그 이유를 예수님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예수님이 위험하니 안가겠다는 거예요. 그러자 예수님이 이야기하세요. 낮과 밤이 있다. 때가 있다. 그러니 지금은 그 때가 아니라는 거겠죠? 그리고 나서... 읽어볼께요.
11 이 말씀을 하신 뒤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우리 친구 나사로는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
12 제자들이 말하였다. "주님, 그가 잠들었으면, 낫게 될 것입니다.“
11절의 이야기는 아직 붙잡힐 때가 아니니 나사로를 살리러 가야겠다고 하니까. 제자들이 잠든 정도면 알아서 낳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가고 싶어요? 아니요. 가기 싫어서요. 그러자 예수님은 분명하게 이야기하세요. 또 읽어볼께요.
11:15 내가 거기에 있지 않은 것이 너희를 위해서 도리어 잘 된 일이므로, 기쁘게 생각한다. 이 일로 말미암아 너희가 믿게 될 것이다. 그에게로 가자.“
다시한번 분명하게 그에게로 가자!라고 말씀하세요. 벌써 세 번째 권고에요. 가자! 나사로에게 가자! 왜요? 나사로는 예수님에게만 친구가 아니었어요. 예수님과 함께 다니고 있는 제자들에게도 나사로는 친구였어요. 예루살렘에 갈 때마다 그의 집에 묵었고, 나사로와 두 누이의 대접을 받았어요. 그런데도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어요. 그들도 가야한다는 생각은 했을 거예요. 그런데 아시죠? 우리가 가도 늦을거야. 살거면 우리가 안가도 살거야. 자기변명하게 되는 거요. 머리로는 알아요. 그리고 마음으로도 나사로를 위해 가고 싶어요. 그런데 가지 않았어요. 왜요? 두려움이 더 컸어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가자!고 말하자.
11:16 그러자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동료 제자들에게 "우리도 그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고 말하였다.
그 중 하나인 도마, 도마 나중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손과 발의 못자국을 만져보기 전엔 믿지 못한다고 하던, 실증주의자. ^^ 아니 이렇게 거창하게 말하지 않아도, 사리와 이치에 분명했던 그가 이야기해요. 예수님께서 저렇게까지 이야기하시니 “죽음을 각오하고 가자!”는 거예요. 그럼 왜 예수님께서 이틀간 머무셨던 걸까요? 제자들을 기다리신 거예요. 제자들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어요. 몇주전에 오병이어로 5000명을 먹인 후 바로 4000명을 먹이실 때 이틀을 기다리신 것과 똑같아요. 그 땐 이방인들의 아픔을 돌보지 않는 제자들을 기다리셨죠? 이번엔 이방인이 아니에요. 그들을 섬기던 나사로가 아픈데도 위험 때문에, 두려움 때문에 가만히 있는 제자들을 기다려주셨어요. 그리고 출발하셨어요.
4. Whee 복음을 경험하라
그리고 몇일을 걸어 베다니에 도착했어요. 그런데 벌써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나 지났어요. 예 바로 출발했어도 나사로가 죽기전엔 도착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러니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죽는 걸 기다렸다는 건 틀렸죠? 아무튼 예수님이 도착하시자 언니인 마르다가 달려옵니다.
11:21 마르다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 여기에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이제라도, 나는 주님께서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주실 줄 압니다."
전 이부분을 읽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저 같으면 무언가를 잃으면 게다가 사랑하는 가족을 잃으면 시험에 들 것 같아요. 예수님이라면 고치실 수 있었을까?라는 능력에 대한 시험일 수도 있지만, 예수님이 정말 날 사랑하시기는 하는걸까?라는 시험이요. 사랑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지? 이런 시험이요. 그런데 마르다는 “예수님은 제 오빠를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고,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거예요.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슬픔과 아픔을 누르고 있는 거예요. 지금은 아프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죠. 언젠가 이 아픔의 이유를 알 수 있겠죠. 지금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어요. “지금은 아니지만” 예... 지난 주 말씀 기억나세요? “언제면 하나님만으로 충분함을 알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아닙니다라고 대답한다고 했죠? 그런데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생명을 경험할 시간도 지금은 아닙니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왜요? 지금은 슬픔의 시간, 아픔의 시간이니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어요.
23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네 오라버니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거예요. 하나님이 바꾸실 거예요.
이번 여름 한 수련회에서 오후특강을 시작하는데 몇 명의 학생들이 둘러 앉아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머리모양도 다양하고, 바로 옆에 선생님이 앉아있어도 전혀 굴하지 않고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솔직히 앞에서 말을 하는 사람으로선 정말 힘든게 사실이죠. 쉬는 시간에 목사님께 혹시 오기 싫은 데 억지로 온 학생들인가요?를 물었어요. 그런데 아니래요. 초등학교때부터 다니는 아이들인데 한 선생님이 어릴 때부터 맡아서 교회를 오게 하고 있데요. 그런데 아기를 낳으셔서 첫날 오지 못하셨는데 그 선생님이 아닌 다른 선생님의 말은 잘 듣지 않는데요. 몇몇 선생님이 가서 아이들을 주의시키는데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선생님 얼굴이 점점 찌그러지더라구요.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겠지만, 그게 언젤까... 조금더 시간이 지나야 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었어요. 예... 다들 상처가 있데요. 한 학생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이학교 저학교로 다녔데요. 그래도 아이들이 밖에 나가지 못하게 막으시면서 꼭 붙들고 계셨는데... 예... 딱 마르다의 표정이 그랬을 것 같아요. 하나님이 언제가 일하시겠죠?라는 마음이요. 그런데 그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느 수련회에 가든 그런 모습이 보여요. 우리교회는 아이들이 기도를 잘 안해요. 우리 교회는 원래 분위기가 이래요. 찬양을 해도 앞줄만 해요. 뒤엔 다들 멍하니 있어요. 이 예수님 말씀에 대한 마르다의 대답도 아주 익숙해요.
24 마르다가 예수께 말하였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 그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내가 압니다.“
예... 언젠가 그렇게 될 것을 압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렇게 될 것을 압니다. 아픔과 슬픔을 억누르는 표정이요. 그러자 예수님이 다시 한번 분명하게 말씀하셨어요.
25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26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오늘 말씀의 제목이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생명의 근원이다. 우리의 많은 두려움은 죽음에서 시작되요. 아이들이 공부를 안한다고 그렇게 조급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의 시간이 유한하기 때문이에요. 제가 예언하나 할까요?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모두 100년안엔 하나님 나라에서 만나게 될거예요. 그리고 대부분 60을 전후해서 은퇴하겠죠? 그러니 은퇴전에 아이가 결혼을 하려면 30세 전후로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 하구요. 그러려면 20대 후반까진 직장을 갖아야 해요. 그러려면 20살엔 대학에 가야하구요. 만약 젊은 100년 아니 3,40년동안 유지된다면, 10대가 20년 30년동안 지속된다면... 예 그렇게 조급해하지 않아도 될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조금이라도 시간이 늦어지거나 빨리자면 큰일 날 것 같아요. 매번 제한시간 안에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영화속 주인공처럼 살아요. 그리고 신앙인들도 죽음이후엔 그 제한시간을 벗어나 살수 있을 것이다. 천국은 그런 곳이다... 나중에 지금은 아니지만 그 제한시간을 벗어난 평안을 누리며 살 것이다 생각하며 살아요. 그런데 지금 예수님은 그 죽음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말씀하고 계신거예요. 그것도 예수님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앞서 생이나 마음으로 옳다고 생각해도 그대로 움직여지지 않을 때가 있다고 했죠? 그런데 대부분 원인은 두려움때문이었어요. 그리고 좀더 근원적으론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가지 못하고 조급해하고, 서로 상처를 주며 살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나를 믿는다면 그 유한의 두려움, 죽음의 두려움을 갖디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고 계신거예요. 이건 영원히 살게 될거라는 영생의 약속이 아니라, 지금 너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믿니?라는 현재적인 질문이에요. 여러분 예수님과 함께라면 두려워하지 않으셔도 되요. 믿으십니까?
5. Yeah 결과를 예견하라.
어느 교회에 가나... 목사님들은 교회의 부족함이나 한계들을 이야기해주세요. 아이들이 적게 온 이유, 아이들이 잘 듣지 않는 이유는 이래서, 저래서 이야기해요. 예 있는 모습 그대로 현실을 알고 파악하는 건 중요해요.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이 자리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거예요.
저녁에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어요. 예 바로 고개를 숙이려는 학생도 있어요. 그런데 전 최대한 먼저 앞을 봐달라고 눈으로 마음으로 들어달라고 부탁해요. 믿음은 들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참 신기했어요. 그 아이들이 힐끔힐끔 앞을 보는 거예요. 아니 정말 잘듣고 있는 거예요. 조금 길어지는 부분엔 조금 고개를 숙이기도 하지만 잘 듣는 거예요. 아이들이 많아 기도하는 동안 모두 확인할 순 없었지만 다음날 아침에 다가가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좋았다고 잘들었다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다음날 그 선생님이 오셨어요. 새로 목사님이 부임했을 때 전화해서 그랬데요. 너무너무 착한 아이들인데, 상처가 많을 뿐인데 다른 선생님이 아무도 맡지 않으려고 한다구요. 그 아이들 더 많이 사랑해달라구요. 예... 이미 그 아이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시작했어요 .그 선생님을 통해서요. 그리고 둘째날은 정말 모두가 뛰며 찬양했어요. 그리고 같이 기도했어요. 신앙의 단계가 다 다르고 연령대가 달라... 우리는 조금더 지나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지금 일하고 계세요. 다른 교회도 마찬가지였어요. 기도회하고 찬양을 할 때 다들 힘들어하더라고... 그런데... 둘째날 찬양들이 다 우리 고등학교에서 하는 찬양들이었어요. 함께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부탁해서 기타를 메고 찬양단과 함께 찬양인도를 도왔어요. 예... 바로 그 때 모두 한 마음이 되었어요. 표정을 보면 알잖아요. 예... 하나님을 만나 신앙이 성장할 때 단계가 있어요. 그런데 성장에는 단계가 있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는데는 바로 지금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만 있어요.
어제부터 오늘까지 “예수님을 최고로 모셔요”라는 제목으로 성경학교를 진행했어요. 그런데요. 전 우리 아이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희망을 가져요. 가끔 눈을 뜨기도 하고, 아직 모르는 이야기도 많지만...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음은 내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느끼거든요.
제가 다른 교회에 가서 말씀을 전하지만... 예 우리 한올교회의 한계? 어려움은 예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어요. 제자훈련을 하면서도 우리 교회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어요. 학교안에 있는 학교교회이다보니 학교의 직급이나 교사 / 학생 사이가 이곳까지 이어지는 것... 그리고 교회나오는 게 업무의 연장처럼 느껴지시는 부분들이 있으시죠? 그래서 기도제목을 나눌 때 불편하시다고 해요. 꼭 군대교회처럼요. 또 반대로 온양한올중고등학교에 소속되지 않은 분들은 꼭 나만 뚝떨어진 느낌을 받으시죠? 그런데요. 우리 한올교회가 온양한올중고등학교의 일부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독립된 교회가 되는 것... 정말 서로서로를 위해 어떤 평가도 다 내려놓고 있는 모습그대로 살아하는 한올교회 공동체가 되는 건... 언제일까요? 우리한올교회의 문제에서 벗어나 더 많은 사랑을 나누는 건 언제일까요? 좀더 훈련하고 좀더 시간이 지나야할까요? 예... 하나님의 시간이 있겠죠? 그런데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은 바로 지금이에요. 믿으십니까?
사랑해야 할 시간, 무엇보다 하나님과 함께해야하는 시간은 바로 지금이에요. 예수님께서 무덤문을 열랍니다. 우리 가운데 있었던 두려움의 문... 머리로는 마음으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면서도 열지 못했던 문... 마음과 행동이 다르게 했던 바로 그 무덤을 열랍니다. 마르다가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 냄새가 난다고 하네요. 우리 가정의 문제는 벌써 수십년이 되어 냄새가 나 그냥 묻어두었답니다. 내 마음의 문제, 우리 한올교회의 문제는 그냥 묻어두었답니다. 아시죠? 문제가 있으면 무관심하는 게 제일 쉬운 일이니까요. 그런데 그 무덤을 열랍니다.
예수님이 다시 한번 말씀하십니다.
11:40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고, 내가 네게 말하지 않았느냐?"
다시한번 믿으라는 거예요. 열라는 거예요. 그리곤 돌이 열리자 기도하기 시작하십니다.
41 사람들이 그 돌을 옮겨 놓았다. 예수께서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말씀하셨다. "아버지, 내 말을 들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42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내 말을 들어주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해서입니다. 그들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일들을 보여주실 것을 믿는다고 기도하십니다. 그리고는
43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고 외치시니,
44 죽었던 사람이 나왔다. 손발은 천으로 감겨 있고, 얼굴은 수건으로 싸매여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그를 풀어 주어서, 가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나사로가 살아서 걸어다니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