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이야기

2011.11.27 한올교회 주일오전 성경이야기(22) 엘리사와 왕들

어린왕자93 2011. 12. 30. 10:47


영상: http://youtu.be/rqmLz9sIqS0

PPTX: http://www.box.com/s/ovprakr8esi8mnkfbapp

 

2011.11.27 한올교회 주일오전 성경이야기(22) 엘리사와 왕들

열왕기하 3:18 그렇습니다. 이런 일쯤은 주님께서 보시기에는 너무나 가벼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모압을 임금님들의 손에 넘겨 주셨습니다.

 

1. oops! 평형을 뒤집어라

벌써 강림절이 되었습니다. 기독교절기에 있어서 강림절은 시작을 준비하는 절기에요. 기독교절기는 예수님의 생애를 중심으로 매년 반복이 되요. 예수님의 탄생을 시작으로 예수님의 성장, 예수님의 고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령님의 활동... 이렇게 일년동안 예수님의 탄생부터 죽음, 부활, 그리고 성령님의 역사까지 예수님의 일생을 묵상하며 살게 되어 있어요. 이 중에 강림절은 바로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절기에요.

그럼 여기서 문제... 강림절은 절기의 끝일까요? 시작일까요? 일년의 시작이 될까요? 끝이 될까요? 절기로 보면 일년의 시작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성탄절이 아니라 강림절부터 시작됩니다. 지난 주가 절기상 추수감사주일이었잖아요. 추수감사절이 강림절 전주인 이유는 추수, 꼭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더라도 강림절이 시작하기 전, 새로운 해의 절기가 시작하기전 일년동안 풍성히 채워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는 절기인 거예요.

그래서 성탄장식도 바로 오늘 강림절부터 하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내년 16일 주현절이 시작될때까지 성탄장식을 하는 것이 기독교 전통입니다. 그런데 오늘부터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자고 하니 무언가 좀 이상하시죠? 왜냐면 강림절은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이지, 오신 것은 아니니까요. 기다림...

 

여러분 혹시 지금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으신가요? 시험 결과? 아니면 평생을 같이 살 사람? 병이 낫는 것? 생일? 선물? 무엇을 기다리고 계신가요? 기다리고 계신 분들에게 물어볼께요. 기다림은 시작인가요? 마지막인가요? 때로 기다림은 당일보다 더 설레이기도 해요. 성탄절 선물이나, 생일선물을 기다리는 아이들, 방학을 기다리는 것, 놀토를 기다리는 마음 ^^ 설레임이라는 느낌 참 좋잖아요. 원하는 것을 기다릴 때의 마음을 설레임이라고 해요.

그런데 설레임으로만 기다릴 수는 없죠? 때론 반대로 시험결과를 기다린다거나, 입시결과를 기다리는 것, 수술결과를 기다린다거나, 하는 것처럼 결과를 알 수 없는 것을 기다릴 때도 있어요. 그럴 땐 초조焦燥(그으릴 초 마를 조)하다. 애를 태우다. 마음을 졸이다.라고도 하는데요. 초조함이라고 합시다. 예 초조함으로 기다리기도 해요.

그리고 하나 더... 나쁜 것을 기다릴 수도 있어요. 이미 나쁜 결과를 예상하고 있을 때일거예요. 매맞을 시간을 기다리는 것, 사형수가 사형을 기다리는 것... 이런 마음은 뭐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을까요? 이런 건 그냥 두려움이라고 합시다.

 

... 기다림은 때로 설레이게 하고, 때론 초조하게 하고 때론 두렵게 해요. 지금 여러분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셋 중에 무엇입니까? 왜냐면 이 질문에 따라 기다림은 시작이 되기도 하고 끝이 되기도 하거든요. 설레임이라면... 시작이 되겠죠. 초조함이라면 시작일 수도 있고, 끝일 수도 있어요. 두려움이라면 끝이 되겠죠.

 

오늘 말씀으로 넘어가 볼까요? 오늘 이야기의 시작은 엘리사입니다. 엘리사는 이주전 나눈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제사장들에게 엄청난 승리를 거둔 엘리야의 제자입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사건이후, 이세벨에게 쫓길 때 자신에게 아무도 없다며 차라리 죽고 싶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그의 제자입니다. 게다가 엘리야가 떠날 때 당당하게 선생님보다 갑절의 능력을 받고 시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던 제자입니다.

 

2. ugh! 모순을 분석하라

우선 엘리사가 있었던 시기는 이주전 주제였던 아합왕 이후시대였어요. 아합의 아버지인 오므리로부터 시작된 강력한 오므리 왕조가 아합왕의 죽음이후 쇠퇴해가고 있었어요. 약해지고 있으니 전쟁도 많았죠. 그리고 종교적으로는 여전히 우상을 섬기고 있었어요. 그런데 우상을 섬기면서도 왕들은 여전히 엘리야나 엘리사의 말을 두려워했어요. 왜냐면 엘리야나 엘리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정말 그대로 되었거든요. 엘리야가 가뭄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자 삼년반동안 가뭄이 있었구요. 전쟁도 모두 그들의 말대로 되었어요.

게다가 엘리사는 그의 스승이었던 엘리야의 후광으로 처음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로 인정을 받아서 역사의 중심에 섰어요. 엘리사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열왕기하 2장부터 열왕기하 13장까지 그 중에서도 엘리사가 중심이 되는 2~9장까지를 읽어보면 꼭 복음서를 읽고 있는 것 같아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수넴여인에게 아이를 갖게 하고, 죽은 아이를 살리고, 기름병을 마르지 않게 하고,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는 등... 정말 재미있으면서도, 우와 진짜 그랬을까? 라고 묻고 싶을 정도로 신기한 기적이야기로 가득해요. 몇가지만 살펴볼께요. 오늘 본문인 열왕기하 3장이야기부터 합시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아합왕 이후 오므리 왕조의 북 이스라엘은 급격히 힘이 약해졌어요. 힘이 약해지면 그 힘에 눌려 조공을 바치고 잘 따르던 나라들이 반발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다윗 왕이후 조용히 이스라엘을 따르던 모압부터 시작이었어요. 이를 괴씸하게 생각한 아합의 아들이 요람왕은 남유다와 에돔과 연합을 해서 모압을 향해 출발해요. 그런데 가는 길에 물이 없는 거에요. 물이 없다는 것은 죽음을 뜻해요. 그러자 남유다왕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에게 묻자고 해요.

 

열왕기하 3:16 엘리사는 예언을 하기 시작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계곡에 도랑을 많이 파라.'

17 주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바람이 부는 것도 보지 못하고, 비가 내리는 것도 보지 못하겠지만, 이 계곡은 물로 가득 찰 것이며, 너희와 너희의 가축과 짐승이 마시게 될 것이다.'

18 그렇습니다. 이런 일쯤은 주님께서 보시기에는 너무나 가벼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모압을 임금님들의 손에 넘겨 주셨습니다.

 

엘리사가 이야기해요. 하나님에겐 너무나 가벼운 일이라는 거예요. 실제로 이스라엘 연합군이 도랑을 많이 파자 땅이 물로 가득해졌어요. 그 다음 전쟁이야기가 더 재미있어요. 그 다음 날 아침에 모압군이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물이 흘러오는 걸 보는데 아침 해가 비추어져서 붉은 핏빛으로 본 거예요. 그래서 세 나라 연합군이 서로 싸운 줄 알고 쳐들어왔다가 이스라엘군이 쉽게 승리하는 이야기로 끝나요. 신기하죠?

다른 이야기들도 재미있어요. 엘리사의 제자 중 하나가 죽었는데-예언자의 제자들, 지금으로보면 신학생이 될까요? 그들은 대부분 가난했었다는 기록이 많아요.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사니, 제사장들처럼 성도님들의 헌금으로 살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많으니 예언자들과 제자들은 가난할 수밖에 없었어요.- 아무튼 그 제자가 진 빚 때문에 자녀들이 종으로 끌려가게 된거예요. 엘리사는 그 과부와 아들들에게 빌릴 수 있는대로 그릇을 빌려다가 문을 잠그고 남아있는 기름통을 부으라고 해요. 그러자 얼마남지 않았던 기름통의 기름이 빌려온 그릇들을 다 채웠다는 거예요. 그 기름을 판 돈으로 빚을 갚고 생활비를 할 수 있었데요. ^^

 

3. aha! 실마리를 드러내라

또 한 이야기는 우리나라 금도끼 은도끼와도 비슷한데요. 예언자학교 기숙사(^^)를 지으려고 나무를 하는데 한 가난한 신학생의 도끼가 물에 빠진거예요.. 당시에 쇠로 만든 도끼는 굉장히 비싸고 중요한 것이었고, 그 도끼를 빌려왔던 신학생은 어떻게 하냐며 울었어요. 그러자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던져 넣었고 도끼가 물위로 떴데요. ^^ 또 한번은 이렇게 먹을 것이 없을 땐 큰 솥에다가 먹을 수 있는 이것저것을 넣고 끓여서 죽처럼 먹잖아요. 그런데 한 신학생이 독이 들어있는 풀을 넣은 거예요. 아무도 먹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엘리사가 밀가루를 뿌렸고, 독이 없어졌데요. ^^ 열왕기하서를 오늘가서 읽어보세요. 정말 재미있어요. ^^

 

어때요? 이런 일이 좀 있었으면 좋겠죠? 엘리사와 같은 능력이 있으면 우리 앞에 있는 어려움들, 우리의 기다림을 설레임이 아니라 초조하게 하고 두렵게 하는 일들을 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으세요? 아무튼 앞서 이야기한 것들은 한 사람, 혹은 한 사건에 대한 것이지만 엘리사 이야기를 읽을 때 제일 긴장되는 부분은 아무래도 전쟁을 할 때에요. 읽다보면 삼국지의 제갈공명도 떠올라요. 이번엔 시리아와의 전쟁인데, 엘리사는 시리아 군이 어디에 진을 치고 있는지를 다 꿰뚫고 이스라엘에게 알려줘요. 엘리사의 경고를 들은 이스라엘 왕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엄히 경계하고 지나가니... 시리아 왕이 생각할 때는 시리아 안에 적과 내통하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밖에 안들었어요. 그런데 누가 그러는 거예요. 그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있어서다. 그래서 시리아 왕은 기마와 병거로 중무장한 강한 군대를 보내서 엘리사가 있는 성읍을 포위해버려요. 큰일났죠? 그런데 별로 긴장 안되시죠? 모 엘리사가 어떻게 하겠지? 싶으시잖아요. 아무튼 좀 긴장해주세요. 엘리사의 시종이 큰일났다고 이야기하자. 시리아 군인보다 우리 편의 사람이 더 많다고 해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시종의 눈엔 저 군인들이 더 많아보였어요. 게다가 기마와 병거는 지금으로보면 탱크와 같은 것이거든요. 엘리사는 하나님께 기도해요. 저 종의 눈을 열어 볼게 해달라구요. 그러자 시종의 눈에 불말과 불수레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보여요. 시리아 군사들이 돌격명령을 듣고 달려오기 시작해요. 어떻게 되었을까요? ^^ 자기들끼리 싸웠을까요? 아니요. 엘리사는 그들의 눈이 멀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그리고 만화처럼 눈이 먼 그들에게 가서 너희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으니 내가 당시들이 찾는 사람에게 데려다주겠다고 하고, 북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 가운데로 데려가요. 그리고 그들의 눈을 열어달라고 하니... 시리아 군사들은 적진의 정 중앙에 포위된 꼴인거예요. 이스라엘 왕은 신났어요. “저들을 죽일까요?” 했더니 안된데요. 그들을 먹이고 돌려보내라고 해요. 모 싸우지도 않고 이겼으니 기분 좋은 왕은 큰 잔치를 벌여 그들을 먹이고 보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어요. 이렇게 하면 다시는 쳐들어오지 않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시리아는 그런 일이 있은지 얼마 뒤에 (6:24) 더 큰 군사들을 데리고 와서 사마리아 성을 포위해버려요. 시리아 왕은 포위만 하고 싸우지 않아요. 사극에서도 많이 나오죠? 포위만하고 있어도 성안의 음식이 떨어지면 성의 이점을 포기하고 문을 열고 싸우러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요. 시간이 지났고 성안의 음식이 다 떨어졌어요. 이스라엘 왕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당나귀 머리 하나가 집한채값에 팔렸어요. 심지어 비둘기 똥도 비싸서 살 수 없는 지경이 되었어요. 왕이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며 성벽위를 걷고 있는데 한 여인이 와서 자신을 도와달라고 해요. 왕은 자신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해요. 그러자 그 여인의 이야기가 기가막혀요. 두 여자가 너무 배가 고프니 오늘은 내 아이를 먹고 내일은 네 아이를 먹자고 했는데... 둘째날 다른 여인이 아이를 안준다는 거예요. 기가 막힌 왕은 그 자리에서 자기 옷을 찢어요. 그리고 이야기해요. 엘리사를 죽이고야 말겠다구요. 왜 그런 걸까요? 시리아의 강한 군대가 자신들의 수중에 있었을 때 그들을 전멸시켰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 아니에요. 엘리사를 죽이러 가지 엘리사가 이야기해요. 내일이 되면 먹을 것을 싸게 살 수 있을 거라구요. 말도 안되죠? 결과는? ... 하나님의 천사들이 시리아군을 두렵게 했고 그들은 모든 물자를 두고 도망갔어요.

 

4. Whee 복음을 경험하라

여기까지가 2장부터 7장까지의 이야기에요. 엘리사에게는 초조하거나 두려움이 보이지 않아요. 엘리사에게는 전쟁도 배고픔도 수많은 적 앞에서도 미래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자신만의 길을 가요. 그의 스승 엘리야는 갈멜산사건이후 모든 희망이 없어졌다며 차라리 죽겠다고 이야기했는데 엘리사는 그런 약해진 모습을 한번도 보이지 않아요. 엘리사 정도의 능력이 있었다면 당연한 것이었을까요?

 

그런데 읽다보면 이런 엘리사의 이야기보다 더 놀라운 것들이 있어요. 엘리사가 이렇게 놀라운 일을 보여주며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었는데도, 이스라엘의 왕들은, 심지어 유다의 왕들도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았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해 일하신 놀라운 일들을 이야기했지만, 엘리야부터 엘리사의 사명은 왕들을 깨우치는 일이었거든요. 이런 놀라운 일에도 불구하고 엘리야도 아합을 온전히 바꾸지 못했고, 그 아들들 시대에 활동안 엘리사도 마찬가지였어요.

 

엘리사와 이스라엘의 왕들, 특히 아합의 아들들은 같은 시대에서 역사의 중심이 되었던 사람들이었어요. 그리고 지금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모두 같이 경험했어요. 그런데도 엘리사는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고, 아합의 아들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어요. 왜였을까요? 그런데 열왕기하 2~8장까지 이야기 중에 유일하게 하나님을 고백하는 한 사람이 있어요. 엘리사 이야기 중에 제일 잘 알려진 이야기 의 주인공인데, 그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시리아 사람이었어요. . 무슨 이야기인지 아시죠? ^^ 바로 나아만 장군이라는 시리아의 한 장수 이야기에요.

 

이미 시리아는 이스라엘보다 강한 나라가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시리아의 장수 중 가장 강하고 또한 존경을 받고 있으며 왕의 총애를 받는 나아만이라는 장군이 문둥병에 걸려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지만 병이 낫지 않아 고민하고 있을 때 그가 이스라엘에 쳐들어왔다가 붙잡아 여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소녀가 이야기해요. 이스라엘에 한 예언자, 즉 엘리사를 만나면 나으실 수 있을 거라는 거였어요. 나아만은 왕에게 보고하고, 왕은 그를 위해 직접 이스라엘 왕에게 편지와 선물을 보내요. 그런데 이 선물을 받은 왕은 더 황당했어요. 어떻게 이 사람의 병을 낫게 하냐는 거예요. 병이 낫지 않으면 이스라엘을 또 쳐들어올 구실로 삼을 것 같았어요. 그 때 엘리사가 사람을 보내서 자신에게 보내라고 해요. 그래서 나아만은 다시 데리고 온 군사들고 함께 엘리사의 집에 가요. 그런데 엘리사는 나와보지도 않고 종을 시켜서 저기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법 씻으라고 해요.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아만은 벌컥 화를 내요.

 

열왕기하 5:11 나아만은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발길을 돌렸다. "적어도, 엘리사가 직접 나와서 정중히 나를 맞이하고, 주 그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상처 위에 직접 안수하여, 나병을 고쳐 주어야 도리가 아닌가?

12 다마스쿠스에 있는 아마나 강이나 바르발 강이, 이스라엘에 있는 강물보다 좋지 않다는 말이냐? 강에서 씻으려면, 거기에서 씻으면 될 것 아닌가? 우리 나라의 강물에서는 씻기지 않기라도 한다는 말이냐?" 하고 불평하였다. 그렇게 불평을 하고 나서, 나아만은 발길을 돌이켜, 분을 참지 못하며 떠나갔다.

 

... 화가 날만하죠. 이런 나라쯤 그냥 무너뜨릴 수도 있는 힘이 있는데... 왕도 나아와 자신을 맞이했는데 듣도보도못한 한 사람이 자신을 이렇게 대우한다는 걸 참을 수 없었어요. 그런데 돌아가는 그를 그의 부하들이 붙잡으며 이야기해요.

 

5:13 그러나 부하들이 그에게 가까이 와서 말하였다. "장군님, 그 예언자가 이보다 더한 일을 하라고 하였다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다만 몸이나 씻으시라는데, 그러면 깨끗해진다는데, 그것쯤 못할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결과는 그 다음절에 나와 있는데 말이 재미있어요. 어린아이 살결처럼 새살이 나왔데요. 전쟁터에서 뼈가 굵은 나아만 장군이 아기피부를 갖게 된거에요. ^^ 그런데 중요한 건 이 다음이에요.

 

5:15 나아만과 그의 모든 수행원이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와, 엘리사 앞에 서서 말하였다. "이제야 나는 온 세계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디, 예언자님의 종인 제가 드리는 이 선물을 받아 주십시오."

 

그러나 엘리사는 그 선물을 받지 않아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 그가 선물을 드리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17 나아만이 말하였다. "정 그러시다면, 나귀 두어 마리에 실을 만큼의 흙을 예언자님의 종인 저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예언자님의 종인 저는, 이제부터 주님 이외에 다른 신들에게는 번제나 희생제를 드리지 않겠습니다.

 

이스라엘 왕들도 하지 않던 고백...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거예요. 그리곤 시리아 사람이기 때문에 왕을 모시고 림몬의 성전에 들어갈 때 허리를 굽힐 수밖에 없는데 그건 신하로서 행하는 것이지 절대로 하나님외의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달라고 이야기해요.

 

참 신기한 거예요. 이스라엘 왕들은 그렇게 놀라운 하나님의 일을 보고도 결단은커녕 회개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나아만 장군은 평생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결단을 했어요.

 

5. Yeah 결과를 예견하라

여러분 오늘 본문이었던 3:18절의 말씀 기억하시죠?

 

열왕기하 3:18 그렇습니다. 이런 일쯤은 주님께서 보시기에는 너무나 가벼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모압을 임금님들의 손에 넘겨 주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열왕기하서에 나와 있는 기적들은 모두 하나님껜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에요. 세상을 창조하신 분에겐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조차 어렵지 않은 일이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지만 하실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어요. 잘 들어주세요. 그 하나가 무엇이냐면...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일이요. 전 어릴 때 생각했어요. 저 하늘 위에 각 나라언어로 내가 바로 여호와다 너희는 모두 교회에 가라! 이렇게 그림을 글씨를 쓰시면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을까? 이렇게요. 그런데 점점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었어요. 어떤 기적도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요. 그리고 알게 되었어요. 하나님께서 정말로 원하시는 일은 바로 그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께도 돌이키는 것이라는 것을요.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것...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겠다고 결단하게 하는 것...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도 어렵지 않아요. 실은 이런 기적도 필요하지 않아요. 그저 여러분이 나아만 장군처럼, 엘리사처럼 하나님 편에 서는 것,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고백하는 것, 두려워서가 아니라, 시험때문이 아니라, 대학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만 사랑하는 것... 그렇게 결단하는 것이면 되요. 결단하는 것도 어렵지 않아요. 그저 나아만 장군처럼 하나님만 사랑하겠다고 고백할 때 갑자기 바나바처럼 재산 모두를 내놓으라고 하지 않으세요. 삭개오처럼 재산을 반을 내놓지 않으세요.. 바리새인처럼 율법주의자가 되지 않으셔도 되요. 하나님은 멀리 있는 큰 강이 아니라 바로 앞에 있는 요단강에 몸을 씻는 것처럼 바로 지금 우리가 있는 바로 이 삶의 자리에서 몸을 씻으라고 하세요. 우리가 순종할 수 있는 것을 원하세요. 바로 지금 할 수 있는 결단을 말이에요.

 

기도하는 것, 예배하는 것, 매일 말씀가운데 서는 것, 기도하는 것, 찬양하는 것... 바로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결단해주세요. 3 제자훈련 / 제자훈련 /

 

감신대에 갔어요.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그저 하나님께서 주신 길을 왔을 뿐이에요.

 

지난 주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 떨리지만, 결론을 알면 평안할 수 있다고 했죠? 엘리사가 초조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도 마찬가지에요.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렇게 수없이 많은 기적을 보여줘도, 이스라엘 왕들은 그들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능력의 사람 엘리야도 세상이 바뀌는 것은 보지 못했어요. 그런데 다음주 나눌 이야기에 솔로몬 왕이후 하나님에게서 멀어져만 가던 북 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모두 하나님께로 방향을 바꾸는 이야기가 나와요. 다음 주 주제입니다. 요하스와 예후!! 역시 to be continued입니다.^^

 

여러분의 기다림은 설레임입니까? 초조함입니까? 두려움입니까? 꼭 기억해주십시오.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우리 앞에 있는 문제는 오래된 문제이든, 급한 문제이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건 너무나 가벼운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말로 원하시는 일은 우리가 바로 지금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건 우리가 결단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2000년전 이 당에 오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시기 위해, 말씀해주시기 위해, 사랑해주시기 위해... 그리고 온르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성탄절을 기다리는 강림절 첫째주입니다. 여러분 강림절은 시작입니까? 끝입니까? 2011년 강림절이 과거에 두려워하던 삶의 마지막이자 하나님과 동행하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되길 축원합니다. 눈앞에 있는 문제들이 아니라, 엘리사처럼 평생을 하나님의 길에 선 여러분들의 시작이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