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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8 한올교회 주일오전 성경이야기(25) 요시야
열왕기하 22:1 요시야는 왕이 되었을 때에 여덟 살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서른한 해 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 여디다는 보스갓 출신 아다야의 딸이다.
2 요시야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고,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을 본받아, 곁길로 빠지지 않았다.
1. oops! 평형을 뒤집어라
오늘 성경이야기의 주인공은 요시야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 있는 요시야에 대한 평가는 그의 일생을 아주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22:2 요시야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고,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을 본받아, 곁길로 빠지지 않았다.
지난 주에 나누었던 히스기야 왕에 대한 평가와 비교해볼까요?
18:3 그는 조상 다윗이 한 모든 것을 그대로 본받아, 주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다.
거의 같은데 하나가 더 추가되었죠? “곁길에 빠지지 않았다”에요. 예 오늘 말씀의 주인공은 곁길로 빠지지 않은 요시야입니다. 개인적으로 구약의 인물 중에 가장 좋아하는 인물 중 하나에요. 솔직히 목회를 나오기 전까진 이름도 잘 몰랐던 왕이었거든요. 이스라엘의 왕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왕이라고 한다면 사울, 다윗, 솔로몬이 되겠죠? 그 다음으로 솔로몬 이후 남과 북으로 나눠지기에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이 좀 알려져있구요. 악한 왕으론 아합왕이, 그리고 이후 지난 주에 나누었던 히스기야 왕이 가장 잘 알려진 왕 중의 하나에요. 그 다음이라면 요아스 왕이 우리나라 역사에 나온 궁예처럼 죽음을 피해 숨어있다가 어린나이에 왕이 되어 종교개혁을 이끌 었던 것으로도 조금 알려져있죠. 솔직히 요시야란 왕은 잘 몰랐어요. 그리고 성경에 쓰여진 분량도 히스기야가 훨씬 길어요. 그런데 구약을 읽고 설교하다가 요아스의 매력에 빠져버렸어요. 좁전에 읽은 22장의 평가외에도 23장에도 그에 대한 평가가 또 있어요. 읽어볼까요?
23:25 이와 같이 마음을 다 기울이고 생명을 다하고 힘을 다 기울여 모세의 율법을 지키며 주님께로 돌이킨 왕은, 이전에도 없었고 그 뒤로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전에도 뒤로도 없었던 왕... 하나님의 법을 지키기 위해 마음과 생명과 온 힘을 기울인 최고의 왕이었다는 거예요. 도대체 요시야는 어떤 왕이었기에 이런 최고의 평가를 얻은 왕이 된 것일까? 오늘 우리모두 요시야의 매력에 빠져봅시다. ^^
우선 요시야 시대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요? 히스기야시대엔 앗시리아라고 하는 나라가 최초로 오리엔탈, 이 지역을 모두 점령했었다고 했죠? 그런데 이 지역은 왼쪽엔 이집트, 오른쪽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을 중심으로 성장한 강한 나라들이 서로를 견제하는 지역이었어요. 앗시리아로 기울어졌던 힘의 중심이 다시 이집트로 또 앗시리아가 바벨로니아에게 패하면서 다시 바벨로나이로 패권이 넘어가고 있는 그런 격변기였어요. 이럴 땐 줄서기를 잘해야해요. 다음 패권을 어느 나라가 잡는가? 누구의 편에 들어야 하는가? 이제 지고 있는 태양 앗시리아인가? 영원한 강자 이집트인가? 아니면 새로운 신흥강자 바벨로니아인가? 여러분은 누구를 선택하시겠어요? 요시야는 어떻게 했을까요? 요시야는 하나님을 선택했어요.
2. ugh! 모순을 분석하라
역대하 34:3 요시야는 왕이 된 지 여덟째 해에, 아직도 매우 어린 나이에,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의 통치 십이년이 되는 해에는,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없애고, 유다와 예루살렘을 깨끗하게 하였다.
지난 주에도 히스기야 왕 이야기를 하면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어요. 히스기야가 산당을 없애버리고 하나님을 섬겼던 왕이었지만, 그의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어려웠던 시대였다구요.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시대가, 역사가, 상황이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할 수는 없어요. 환란 중이든, 평화의 시대든 우리는 항상 선택해야 해요. 하나님을 찾을 것인가? 아니면 세상이 원하는 것들을 그대로 따라갈 것인가? 믿는 집에서 태어났는가?도 크게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히스기야와 요시야 왕의 아버지들 모두 세상을 선택했던 사람들이었거든요. 하지만 그들은 부모의 길을 따르지 않고, 온 세상이 가는 길을 가지 않고 하나님을 선택했어요. 하나님을 선택했을 때 해야하는 일이 바로 하나님이 아닌 것, 기억하시죠? 아합의 죄, 여로보암의 죄, 산당을 남겨둔 죄... 작은 산당 하나까지도 다 없애버려요. 그릇에 새로운 것을 담기 위해선 그전에 그 안에 담겨져있던 것들을 버려야해요. 깨끗이 버려야 해요.
지금으로부터 2700년전 지구 정반대편에 있는 중동의 한 나라였던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 읽고 있지만, 성경은 항상 지금 2011년 12월 18일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질문해요. 다음으로 넘어가기에 앞서 여기서 결단해주셔야 해요. 마음속에 산당을 잔뜩 세워둔채로, 주일만 교회에 오고 나머지 시간은 행복은 돈과 명예에서 찾고, 재미는 컴퓨터와 tv에서 찾고 외로움은 SNS와 스마트폰을 통해 해결하고... 괴로움은 술과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핑계하며 잊고 사는 삶... 그래서 점점 그 마음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야 할 우리의 마음, 항상 기쁨과 감사로 넘쳐야 할 우리의 영혼이 폐허가 되어가고 있진 않는가? 지금 묻고 계세요. 히스기야와 요시야는 상황상,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하나님이 아닌 힘이 있는 나라에 기댔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주변을 봐도 다들 줄서기 바빴어요.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을 선택했어요. 그를 위해 그 마음안에 있는 없어도 괜찮은 것들을 다 없앴어요. 그리고 하나님만을 섬겼어요.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래요? 내 마음의 성전에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을 부수어 버리실래요? 저 불평팔찌 다시 찼어요. ^^ 불평이 들어오는 순간, 미움이 들어오고 미움이 들어오는 순간 하나님의 평안이 사라지던걸요? 산당을 없애도 금새 다시 에워져요. 히스기야가 산당을 없앴어도 한 대안에 다 다른 산당이 생겼잖아요. 그런데 끝까지 하나님 아닌 산당들을 없애겠다고 결단합시다. 우리의 선택이에요. 정말이에요. 하나님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고, 선택할 수 있는 능력도 주셨어요. 선택하셨습니까? 예 이제 그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어요.
산당을 없애고 요시야는 예루살렘 성전을 수리하기 시작했어요. 요시야 제 18년이었어요. 하나님을 찾은 것이 8년, 산당을 부수기 시작한 것인 12년이었어요. 요시야는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결단하고 우상제단을 버린 후 성전을 보수했어요. 보수했다는 이야기는 그 전까진 낡고 부서진 채로 그냥 두었다는 거잖아요. 예..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교회에 왔는데, 이것 저것 문제가 있어도 보이지도 않고 그냥 두었던 거예요. 소중하면 관심을 갖게 되어 있어요. 역대하 34:11절에 보면 유다의 역대왕들이 폐허로 만든 건물을 손질하게 하였다라고 되어 있어요. 우리의 성전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 한올교회는 어떤가요? 요즘 우리가 주일마다 예배하는 소강당도, 평일에 예배하는 한올교회도 형광등이 꺼져서 어두워진 경험 없으시죠? 겨울이 되었는데 석유가 없어 춥게 예배하신 적 없죠? 예전엔 예배중에 기름없다고 경고음 나고 춥게 예배하고 했었잖아요. 한올교회 관리부장님이신 박영식 권사님께서 제가 신경쓰지 못하는 부분까지 하나하나 다 고쳐주시고, 보수해주고 계시거든요. 건물로 된 교회만인가요? 성경은 우리의 몸이 바로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말하거든요. 지금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있는 성전은 매일같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아름다운 성전입니까? 아니면 폐허가 되어 있으십니까? 산당을 없애도 성전을 보수하지 않으면 다시 산당이 세워져요. 아시죠? 건물을 폐허로 만드는 법... 그냥 두는 거예요. 사용하지 않는 거예요. 특별히 무언가를 할 필요도 없어요. 그냥 두면... 건물은 폐허가 되요. 오랜만에 한번 점검해봅시다. 우리 교회에 표어가 있어요. 은혜가 삶이 되는 한올교회가 되기 위해 해야할 일들이요. 기도하는 나, 말씀위에 서는 가정, 예배하는 교회, 제자된 우리... 하나님과 대화하고 계시나요? 말씀을 통해 일용할 양식, 매일을 살아갈 힘을 얻고 계신가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배하고 계신가요? 그 복음을 항상 마음에 품고 전하고 계신가요? 이 중에 무너지고 황폐해진 부분이 있다면 예 보수합시다.
3. aha! 실마리를 드러내라
산당을 부수고 성전을 보수하는 일... 그런데 이건 요아스도 히스기야도 했던 일이에요. 그런데 요시야는 그 이전에 요아스나 히스기야와는 구분되는 평가를 받는다고 했죠? 그가 성전을 보수하다가 무언가를 발견했거든요.
대하 34:14 힐기야 제사장은, 주님의 성전에서 궤에 보관된 돈을 꺼내다가, 모세가 전한 주님의 율법책을 발견하고,
15 사반 서기관에게, 자기가 주님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다고 하면서, 그 책을 사반에게 주었다.
바로 “주님의 율법책”이 발견되었어요. 어? 그런데 여기서 무언가 이상해요. 주님의 율법책이라뇨? 그럼 지금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엇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단 이야기죠? 성경책이 없어졌다가 나타난 걸까요?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으니 솔로몬 이후로 말씀이 사라졌던 걸까요? 또 하나의 질문을 가지고 좀 더 읽어봅시다.
34:18 사반 서기관은, 힐기야 제사장이 자기에게 책 한 권을 건네 주었다고 왕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사반은 그 책을 왕 앞에서 큰소리로 읽었다.
19 왕은 율법의 말씀을 다 듣고는, 애통해 하며 자기의 옷을 찢었다.
이 율법책이 발견된 건 요시야 왕 제 18년이었어요. 요시야가 하나님을 찾기 시작한지 10년이 되었어요. 산당을 없애기 시작한지 6년이 되었어요. 예... 이정도만 해도 요시야는 다윗왕처럼 하나님만 섬겼던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을 정도의 신앙을 갖게 된거에요. 그런데 그가 율법의 말씀을 듣고 애통해하기 시작해요. 옷을 찢는다고 하면 우리 학생들은 찢 택연처럼 가수들이 몸매를 드러내기 위해 찢는 것을 상상할지 모르는데... 아니에요. ^^ 왕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난 이런 옷을 입고 있을 자격도 없다고,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당했을 때 가슴을 치며 옷을 쥐어 뜯으며 아파해보신 적 있으세요? 갈가리 찢겨진 마음을 감당할 길이 없어 옷을 찢는 거예요. 아니 다윗왕과 같은 히스기야왕과 같은 일을 한 요시야가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무너진 걸까요?
21 "그대들은 주님께로 나아가서, 나를 대신하여, 그리고 아직 이스라엘과 유다에 살아 남아 있는 백성을 대신하여, 이번에 발견된 이 두루마리의 말씀에 관하여 주님의 뜻을 여쭈어 보도록 하시오. 우리의 조상이 주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모든 것을 지켜 따르지 않았으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쏟으신 진노가 크오."
요시야는 그가 두루마리에 적힌대로 살지 않았다라고 고백하고 있어요. 무슨 이야기일까요? 예... 요시야이전에도 히스기야시대에도 말씀은 있었어요. 그런데 구전된 것들과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들만 남겨져 있었던 거예요. 왜요? 시간이 지나고 말씀을 옮겨 적으면서 자꾸 변질된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신 말씀들은 대부분 구약에 기록된 그대로에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큰 계명도, 원수를 사랑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도 다 이미 기록된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 말씀을 자신이 편할대로 해석해버렸어요. 하나님은 우리의 삶이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닮아 거룩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우리는 주일예배만 거룩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심지어 주일예배조차도 내 계획, 내 시간에 따라 어디까지 해야하는지를 결정해요. 원수를 사랑하라고 네 땅에 나그네 된자들을 돌보라고 하셨는데 이방인들을 배척하는 것은 물론, 사랑해야하는 친구 가족도 원수로 만들어요. 왕따로 만들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러면서도 그것이 죄라는 것을 몰랐어요. 다들 그렇게 사니까요. 신앙선배들도 다들 그렇게 사니까요. 교회도 항상 그랬어요. 그런데 그 때 말씀을 찾았어요. 전해오는 말씀이 아니라 선배들이 해주는 말씀이 아니라 신앙인 부모가 아니라 말씀을 찾았어요. 그런데 주님의 말씀을 발견했어요. 말씀을 읽어보셨죠? 성경공부해보셨죠?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기준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는지가 보여요. 그런데 이건 단순히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다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진 거예요. 하나님의 복에서 멀어진 거예요. 하나님의 행복에서 멀어진 거예요.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니 재앙속에 머물 수밖에 없는 거예요. 지금 수없이 기사회되는 교회와 목사님들의 잘못된 모습... 하나님의 기준으로 하나님을 닮아야 할 우리가 세상을 닮아버린 거예요. 세상을 닮은 모습 때문에 지금처럼 비난받고 있는 거예요.
4. Whee 복음을 경험하라
여러분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나중에 포로에서 돌아온 에스라가 말씀을 읽고 백성들을 하나님께도 돌이킬때도 바로 이 말씀을 통해서였어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전한 복음도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었어요. 오후예배때 나눌 말씀도 예수님의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구약에 약속한 하나님의 은혜의 해가 시작되었다는 거였어요. 중세를 시작한 성 어거스틴도 말씀을 통해 혼돈한 교회를 말씀위에 세웠구요. 그 중세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자 말씀으로 돌아가던 루터를 통해 다시 교회가 제 자리를 잡았어요. 성공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자 웨슬리 목사님께서 말씀으로 우리 감리교를 세우셨구요. 지금도 끊임없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던 교회가 말씀으로 제 자리를 찾고 있어요. 요시야는 그로부터 13년간 이 말씀을 온 백성에게 전하기 위해 살아요. 요시야는 백성들을 모두 주님앞에 세우고 언약을 맺게 해요.
34:29 왕이 사람을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불러모았다.
30 왕은 주님의 성전에 올라갈 때에, 유다의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어른으로부터 아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백성을 다 데리고 주님의 성전으로 올라갔다. 그 때에 왕은 주님의 성전에서 발견된 언약책에 적힌 모든 말씀을 사람들에게 크게 읽어 들려 주도록 하였다.
31 왕은 자기의 자리에 서서, 주님을 따를 것과, 마음과 목숨을 다 바쳐 그의 계명과 법도와 규례를 지킬 것과, 이 책에 적힌 언약의 말씀을 지킬 것을 맹세하는 언약을, 주님 앞에서 맺었다.
백성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그저 왕이니까 온 것이었을까요? 아니요. 그들은 이미 요시야와 함께 18년동안 하나님을 찾던 이들이었어요.
그리고 하나님만 섬기기로 결단한 백성들과 함께 예배를 회복해요. 그전까지 예배는 백성들과는 상관이 없는 예배였어요. 그저 윗사람들만 참가하는 예배였어요. 히스기야시대에도 예배를 회복하려고 했지만 예배를 드리자고 보낸 전령들을 비웃었다는 이야기나 나와요. 그런데
이 이야기는 열왕기하서에 더 자세히 나오는데요. 백성들이 예배할 수 있도록 엄청난 재산을 내놔요. 당시에는 예배를 드리려면 소와 양, 염소, 최소한 비둘기라도 바쳐야 했어요. 그런데 지금 요시야시대도 태평성대가 아니라고 했죠? 예배하자고 해도 말씀을 따르자고 해도 따를 수 있는 시간과 돈이 없어요. 그런데 요시야 왕과 지도자들이 엄청난 것들을 내려놔요. 그리고 그것으로 백성들을 예배하게 해요. 그리고 하던 일을 계속해요. 작은 산당도 남겨두지 않아요. 심지어 폐허가 된 이미 나라를 잃어버린 북 이스라엘 지역까지 가서 여로보암이 세워놓은 황금송아지를 무서버려요. 드디어 400년간 이어온 여로보암의 죄가 무너지는 순간이에요. 요시야는 죽을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해요. 그랬더니 보통은 왕에 대한 평가만 나오거든요. 그런데 요시야 왕에 대해선 그 백성전체에 대한 평가가 기록되어 있어요.
32 왕이 거기에 있는 예루살렘과 베냐민 사람들도 이 언약에 참여하게 하니, 예루살렘 주민이 하나님, 곧 조상의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을 따랐다.
33 이와 같이 요시야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모든 땅에서 혐오스러운 것들을 다 없애 버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으로 주 하나님을 섬기게 하였으므로, 요시야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백성이 주 조상의 하나님께 복종하고 떠나지 않았다.
그 자신만이 아니라 온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데요. 대단하지 않아요? 요시야는 자신만이 아니라 온 백성들을 말씀으로 하나가 되게 했어요. 산당하나 남겨두지 않았어요. 그런데... 요아스와 마찬가지로 요시야도 전쟁터에서 좀 허무하게 죽어요. 그가 왕이 된지 31년 하나님을 찾은지 23년, 산당을 없애기 시작한지 19년, 말씀을 찾고 철저하게 순종하고 13년이 되던해였어요. 그래도 그의 종교개혁은 성공한 것일까요? 다음시간에 나누겠지만... 요시야 이후 왕들은 그 이전 왕들처럼 살아요. 그리고 21년이 지난 후 남 유다는 북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게 멸망당한 것처럼 바벨로니아에게 멸망당해요.
5. Yeah 결과를 예견하라
좀 허무하다구요? 아니요.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실은 전 성경을 읽으면서 항상 궁금한 게 있었어요. 이스라엘 백성은 거의 단 한번도 하나님만 꾸준히 섬겨본 일이 없어요. 말이 유일신이지 모세때 잠깐, 다윗 때 잠깐, 히스기야나, 요시야때 잠깐 뿐이었어요.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했던 지도자들이 죽고 나면 그들은 다시 하나님을 버렸어요.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에 기적이 생겨요. 나라를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만 섬기기 시작해요. 한명의 지도자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말씀을 암기하고 말씀을 삶의 중심으로 삼기 시작해요. 나라를 잃어버리고 바벨로니아로 끌려간 이들이 성경을 적기 시작해요. 모든 것을 두고 포로로 끌려갔으니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말씀을 외우고 잊지 않게 기록하는 일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그 일을 포로로 끌려가서 해요. 그리고 중간 중간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조금씩 잘못된 방향으로 가기도 했지만, 말씀을 삶의 중심으로 두는 건 나라가 멸망한지 260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유대인들은 자녀들에게 구약을 가르쳐요. 세상이 아무리 돈과 권력을 중심으로 움직여도 유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구약과 탈무드를 가르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식의 근본이라고 가르쳐요. 그래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의 30%가 넘는 사람이 유대인이라고 해요.
도대체 이스라엘이 이렇게 결정적으로 바뀐 게 언제냐는 거예요. 그건 바로 요시야때문이었어요. 요시야가 죽고 21년후에 남유다가 멸망해요. 다음시간에 유다가 멸망하는 모습을 좀더 자세히 나누어볼거에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남유다가 바벨로니아에게 멸망하고 끌려간 사람들, 비록 요시야 왕 이후 왕들이 다시 산당을 세우고 여로보암의 죄와 아합왕의 죄까지도 저질렀지만 포로로 끌려간 이들은 어릴 때, 그들이 성장할 때 요시야 왕으로부터 말씀을 배운 이들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정확한 말씀으로 무장된 이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그 극한상황속에서 물었던 거예요. 참 하나님은 누구인신가? 우리가 이렇게 고난을 받게 된 건 무엇때문인가? 환경때문인가? 힘이 없어서인가? 아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버렸기 때문이다. 요시야가 통곡했듯 그들은 포로로 끌려간 그 이역만리에어 통곡했고, 말씀을 기억했어요. 어릴 때부터 요약본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말씀을 들었기에 기억할 수 있었고, 외운 것들을 적기 시작했어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구약성경이 바로 포로로 끌려간 자리에서 정리된 것들이거든요.
여러분 요시야의 개혁은 실패인가요? 아니면 성공인가요? 성공이었어요. 단지 자기 시대에만 영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의 자손들을 하나님께로 이끈 터닝포인트가 되었어요. 그가 했던 일은 간단했어요. 하나님을 찾고, 산당을 부순 일, 그리고 예배를 회복한 일... 그런데 여기까진 히스기야도 했었다고 했죠? 그런데 거기서 말씀을 찾아요. 그리고 자신의 삶을 말씀에 비추어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죽을 때까지 평생을 들여 산당을 없애고 예배를 회복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온힘을 쏟았어요.
지난 주 히스기야가 기다림을 준비했다고 했죠? 그래서 히스기야 터널을 팠어요.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실 것을 믿었기에 돌산을 500m 넘게 팠어요. 왜냐면 기다림을 위해선 생수가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요시야는 몸을 채우는 생수가 아니라 영원히 끊이지 아니하고 솟아나는 말씀의 생수를 팠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 말씀의 생수를 심었어요. 말씀의 생수, 예배의 생수, 순종의 생수... 왕이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어도, 그 생수는 오염되지 않았어요. 심지어 나라를 잃고 가족을 잃고 모든 것을 잃었어도 요시야가 심은 생수는 마르지 않았어요.
여러분 그 생수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이 성경안에 있어요. 여러분 이 예배속에 있어요.
더 놀라운 사실을 알려드릴까요? 요시야가 평생했던 일... 말씀이 지시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예수님이세요. 지금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초청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그 생수가 되시겠다구요. 요시야가 판 생수는 말씀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것이었다면, 예수님께서 주신 생수는 생수가 강이 되어 넘쳐흐른다고 했어요. 2000년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아기 예수님으로 오신 이유는... 그 생수를 주시기 위해서요. 아니 예수님 자체가 바로 그 생수거든요. 이건 선물이에요.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기만 하면... 입으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에요. 정말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고백하면... 바로 그 순간... 이 놀라운 생수, 성경이 약속하는 그 놀라운 예수님의 생명을 경험할 수 있어요. 멈추지 않아요. 아무리 퍼도퍼도 마르지 않아요. 여러분 제가 매일 행복한 이유, 하루에 몇 번의 예배를 드려도 드릴수록 힘이 나는 이유! 바로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거든요. 매일 아침 말씀으로 시작하거든요. 어제만 해도 세 번의 예배를 드렸어요. 너무너무 행복했어요.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성전을 무엇을 채우시겠습니까? 여러분의 하루하루 그 소중한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시겠습니까? 여기에 마르지 않는 생수가 있습니다. 2000년전에 오신 예수님입니다. 그 예수님에 대해 기록된 바로 이 성경입니다. 이 안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행복이 있습니다. 어떤 환란에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평안이 있습니다. 2012년 속회부터 모든 조직을 다시 가동할 것입니다. 제자훈련도 한꺼번에 시작할 거예요. 주일, 평일 낮, 평일 저녁 다른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마르지 않는 생수, 생명을 위해서에요.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주일오후, 평일 낮, 평일 저녁입니다. 가능한 날을 정하시고 지금 결정해주십시오. 1월 1일 2012년을 시작하면서 시작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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